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성경을 많이 찍어내겠다는 일념으로 안 되는 것도 되도록 만든 기업가 정신
주요 내용
- 금속 장인, 와인 생산자, 화가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비법과 기술을 조합하고 비즈니스 모델과 유통 체계를 구축한 창업가
- 완성된 책 대신 인쇄된 종이 뭉치만 생산하고 공급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지역별 고객 취향에 잘 맞는 책으로 완성되도록 적절한 사업영역 설정
- 최고 품질을 추구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최고급 양피지를 포기하고 대신 최고급 종이를 선택할 줄 아는 현실 감각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400~1468)는 금속활자(moveable metal letters)와 인쇄기(printing press)를 발명해서 유럽 최초로 금속활자인쇄 사업을 일으킨 역사적 인물입니다. 성경을 많이씩 찍어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해서 결국 성공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비법과 기술을 조합하고 비즈니스 모델과 유통 체계를 구축한 창업가였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없었다면 60년후 유럽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뒤에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금속활자인쇄는 지식이 더 이상 소수만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세상을 바꾼 기술입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성경>
1455년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창세기 첫 페이지를 보면 진한 검정색 글자가 두 단으로 우아하게 배열되어 있고, 손으로 본문 주변 여백에 그려 넣은 화려안 색채의 식물과 새 그림이 있습니다. 아주 읽기 편하고 보기에도 아름답도록 잘 만들어진 책입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성경은 전체 약 180권이었는데 그 중 48권이 현재까지 온전히 보전되어 오고 있습니다.
구텐베르크는 1400년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 800~1806)의 주요 도시 마인츠(Mainz)에서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집은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권세가 강했던 대주교가 머문 마인츠 대성당 바로 근처였습니다. 마인츠는 현재 독일에서 손꼽히는 대학도시이자 관광도시입니다. 구텐베르크는 이후 슈트라스부르크(Strasbourg)에 오래 살면서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구상했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소명
그가 찾은 소명은 인쇄 기술을 개발해서 성경을 한꺼번에 많이씩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라틴어로 양피지나 종이 위에 손으로 한 글자씩 써넣은 성경책을 성당이나 수도원에서 사용했는데, 만드는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렸고 글자를 손으로 아주 작고 선명하게 쓰는데 한계가 있어 성경책 크기가 아주 컸습니다.
<필사 제작한 성경>
당시에도 한꺼번에 여러 장씩 찍어내는 인쇄 기술이 있었지만 나무판에 그림이나 글자를 새겨 넣어 한 페이지씩 찍어내는 목판 인쇄술이었습니다. 종이나 양피지 위에 물감을 바른 나무 인쇄판을 엎어놓고 망치로 두들겨서 찍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성화나 기도문 같이 간단한 내용을 반복 인쇄하는데 적합했지만 인쇄 품질이 좋지 않아 정교한 내용을 담아내기 힘들었고 글자나 일부 내용을 수정하려면 판 전체를 다시 조각해야했기 때문에 길고 복잡한 내용의 책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구텐베르크가 극복한 기술적 난관
구텐베르크가 생각한 아이디어는 금속 글자들을 여러개씩 만들어 놓고, 평평한 판 위에 필요에 따라 배열한 뒤, 그 위에 잉크를 바르고 종이나 양피지를 눌러 글자를 찍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숙제이자 가장 큰 난관은 라틴어 글자 종류별로 수백개씩 똑같은 모양으로 작고 정교하게 거울에 반사된 모양으로 양각된 금속 활자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종이가 찢어지지 않도록 높이도 정확히 같아야만 했습니다. 그는 귀금속 세공 전문가와 금속 장인들을 찾아 비법과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다행히 마인츠에서 가까운 독일 모젤(Mosel), 자르(Saar) 지방이 유럽에서 금속 주조 기술이 가장 발달된 곳이었고 이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금속 활자와 이를 조합해서 인쇄한 글>
두번째 숙제는 활자에 바른 잉크가 흘러내리고 번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구텐베르크는 화가들이 사용하던 바니쉬를 잉크에 섞어 잉크가 끈적끈적해지도록 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성경을 보면 필사본과 달리 글자에 윤이 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니쉬 성분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번째 숙제는 활자판 위에 올려놓은 종이에 전체적으로 균일하고 강하게 압력을 가해 글자가 선명하게 나오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인츠는 와인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었고 덕분에 구텐베르크는 와인병에 코르크 마개를 끼우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활용해서 나선 기둥을 돌려 종이를 큰 판으로 누르는 프레스기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찍어낸 구텐베르크의 성경은 글씨가 매우 선명해서 교황 비오 2세가 “안경을 쓰지 않고도 읽을 수 있다”고 칭찬했다고 합니다.
구텐베르크가 성경을 인쇄하기 위해 사용한 모든 기술은 이미 있던 것들이지만 그는 이것들을 모아 유기적으로 조합했습니다. 프레스도 이미 있던 것이었지만 글자 인쇄에 사용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바니쉬라는 것도 당시 굉장히 낯선 것이었지만 그 유용성을 알아보고 잘 이용했습니다.
구텐베르크가 극복한 경영 과제
기술적 문제를 해결한 구텐베르크가 풀어야 할 경영 과제도 많았습니다.
첫번째는 가장 적절한 인쇄 매체를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한 말씀을 담은 성경을 인쇄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그는 가장 고급 재료인 양피지를 쓰고 싶어했지만 2000페이지 짜리 성경 180권을 만드는데 쓰기 위한 양피지를 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양 한마리를 잡으면 겨우 여덟 쪽 분량 양피지가 나왔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대신 가장 좋은 종이를 사용하기로 합니다. 문제는 당시 최고급 종이는 이탈리아에서 생산된 종이였고 알프스 산맥 너머 멀리 떨어진 이탈리아에서 종이를 사오기에는 운송비가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다행히도 마인츠에서 가까운 프랑크푸르트에서 매년 두번씩 무역박람회가 열렸고, 그는 여기에서 이탈리아 종이 상인들에게 주문하고 매년 두번씩 공급받으므로써 운송비를 최대한 아낄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 과제는 장기화되는 프로젝트에 속도를 붙여 빨리 잘 마무리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인력을 고용했습니다. 세공 전문가, 금속 주조 전문가, 목공 전문가는 물론이고 글자를 조립해서 단어, 단락, 쪽을 구성할 라틴어 전문가, 바니쉬가 섞인 끈적끈적한 잉크를 칠하는 사람, 프레스 기계에 활자판을 설치하는 사람, 프레스 기계를 작동하는 사람, 그리고 교정을 볼 사람까지 고용해서 전문가들이 분업하는 인쇄 사업소를 꾸몄습니다. 특히 라틴어 전문가를 뽑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15세기에 대학에서 라틴어를 공부한 사람중에서 손가락을 더럽히며 글자를 조합하는 일을 원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속도를 높이기 위한 또 한가지 방법은 완성된 책을 만들지 않고 인쇄된 종이 뭉치만 생산해서 라인강 물류를 통해 유럽 곳곳 책 장인들에게 공급함으로써 현지 장인들이 현지 독자 취향에 맞게 제본하고 장식해서 책으로 완성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활자를 만드는데 2년이 걸렸지만 이후에는 성경책 한권 필사하는데 걸리는 시간동안 180권을 인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손꼽을 어려움은 자금 조달이었습니다. 비교적 부유한 사람이었지만 재료를 사들이고 많은 인건비를 지불하기에는 자본이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텐베르크는 돈을 빌리고 사업 파트너를 구하곤 했습니다. 구텐베르크에 대한 기록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원인중에 하나가 바로 이렇게 조달한 돈이 다 떨어져 문제가 생기거나 파트너와 틀어지는 바람에 법정 싸움을 많이 해서 그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자금 조달을 위한 또 한가지 방법으로 그는 면죄부(indulgence)와 라틴어 문법책을 인쇄해서 팔았습니다. 당시 교회에서 일일이 손으로 적어서 주던 면죄부를 구텐베르크는 이름과 날짜 쓸 공간만 비워놓고 수천장 인쇄해서 교회에 팔았고, 교회는 덕분에 인건비를 줄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인쇄한 도나투스(Donatus) 라틴어 문법책은 유럽 최고의 베스트셀러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구텐베르크에게 도움이 된 환경 요소
1450년대 당시 마인츠의 지리적 이점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에서 황제 다음으로 가장 권세가 강한 대주교가 마인츠 대성당에서 머물렀습니다.
마인츠는 국가급 도시로서 프랑크푸르트, 슈트라스부르크, 쾰른과 같은 독일 주요 도시는 물론이고 네덜란드등 곳곳의 자유롭고 부유한 국제 도시에도 접근하기 쉬운 지리적 이점이 있었고 라인, 마인, 모젤, 네카 강을 통해 유럽 전역과 연결되는 교통 운송망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인쇄된 책을 사줄 지식인층 소비자들에게 접근하기 쉬웠습니다.
널리 퍼져나가는 기술
1460년 마인츠에서 내란(civil strife)이 일어나 구텐베르크의 사업에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가 고용했던 기술자들이 쾰른, 이탈리아로 옮겨가면서 인쇄된 책과 기술이 전파되었고 멀리 영국까지도 확산되었습니다. 인쇄된 책에 대한 수요가 워낙 많아져서 활자 자체도 많이 생산되고 거래되기 시작했고 1470년경에는 인쇄소를 차린 사람이 수백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은 정치적으로 통일되지 않은 형태였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정치 종교적 이유로 인쇄 활동, 즉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517년 마틴 루터가 교회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면서 쓴 라틴어 논문을 그의 친구들이 독일어로 번역하고 인쇄해서 독일 지역 전체에 뿌렸고 종교개혁이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 작업 과정
정확한 자료나 작업소가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인츠 구텐베르크 박물관에 관련 자료를 종합해서 추정 재현한 작업소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 활자판에 활자를 조합해서 프레스기에 올려 놓는다
- 핀 구멍에 맞춰 종이를 고정한다
- 활자에 말털을 채운 가죽 쿠션 두개로 잉크를 두들겨 바르고 고르게 편다
- 종이를 고정한 판을 활자판 위로 이동시켜 덮는다
- 프레스기의 나선 기둥을 돌려 종이를 활자판 위에 압착시킨다
<마인츠 구텐베르크 박물관에서 인쇄 시연하는 모습>
용어 설명:
활자(Moveable letter, type) : 글을 인쇄하기 위해 낱글자를 사각기둥 위에 양각으로 새긴 것
인쇄기(printing press) : 종이를 활자판 위에 눌러 글자를 인쇄하는 기계장치
바니쉬(varnish) : 광택제. 한국에서는 바니쉬를 줄여 니스라고 부르기도 함.
참고 문헌:
Germany: Memories of a Nation. Written by Niel MacGregor. Published in Penguin Book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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